@산/산행일지

부산 백양산 낙타봉-->불태령(북봉)-->백양산-->애진봉-->운수사(2010.1.9)

푸른솔♬ 2010. 1. 10. 19:43

[코스] 구포동 고려당제과점-->삼경장미아파트-->태호빌라-->294봉-->푯말-->545봉-->낙타봉(575봉)-->570봉-->616봉(북봉, 불태령)-->안부-->614봉-->백양산(642m)-->애진봉-->운수사-->운수사계곡-->백양터널입구-->모라 우신아파트 버스정류소

 

[기상] 많이 춥지 않는 겨울 날씨

 

 

 

#1. 46번 버스('고려당제과')에서 내려 이 건물 앞 도로를 건너... 

 

 

 

 

 

#2. 조개구이집 옆의 골목을 따라 오르다보면...

 

 

 

 

 

#3. 구포 팽나무 옆을 지나서...

...[구포 팽나무]

 

천연기념물 제309호.(1982.11.04 지정)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남부 지방에서는 폭나무, 포구나무 등으로 불린다. 나무가 매우 크게 자라며 옛날부터 풍수지리설에 따른 비보림이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많이 심었다.

 

부산 구포동의 팽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8.2m, 둘레 5.74m이다. 구포역에서 백양산 방향으로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자라고 있으며, 줄기 아래쪽에 기이하게 나온 돌기와 여러 갈래로 발달한 가지가 웅장함을 보이고 있다.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나무로 신성시되어 왔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부산 구포동의 팽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4. 태호빌라 옆의 계단을 따라 산으로...

 

 

 

 

 

#5. 오르다보면 멀리 삼경장미아파트가 보인다.

 

 

 

 

 

#6.

 

 

 

 

#7. 얼마 오르지 않아 조망이 열린다.

 

 

 

 

 

#8. 구포대교

 

 

 

 

 

#9.

 

 

 

 

 

#10.

 

 

 

 

 

#11. 이제 본격적인 오름길이 보인다

 

 

 

 

 

#12. 체육시설도 지나고

 

 

 

 

 

#13. 545봉에서 바라본 만덕동 일대와 주변 산봉우리들

 

 

 

 

 

#14. 상계봉

 

 

 

 

 

#15. 만덕고개

 

 

 

 

 

#16. 금곡동 일대의 아파트군

 

 

 

 

 

#17. 파노라마

 

 

 

 

 

#18. 백양산 자락에 뿌리내린 학교들. 왼쪽에서부터 신덕중학교, 신덕초교, 만덕고등학교 순이다.

 

 

 

 

 

#19. 낙타봉(575m)

 

 

 

 

 

#20. 낙타봉

 

 

 

 

 

#21. 만덕동을 다시 바라보고...

 

 

 

 

 

#22. 지나온 545봉도 되돌아본다.

 

 

 

 

 

#23. 강서구 대저동 일대. 멀리 신어산(오른쪽)이 보인다.

 

 

 

 

 

#24. 왼쪽편으로 화명동, 금곡동 일대가 보인다.

 

 

 

 

 

#25. 산으로 둘러싸인 구포3동 지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26. 지나온 마루금

 

 

 

 

 

#27. 구포동과 김해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28. 전방의 철탑을 지나면 만남의 광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된다.

 

 

 

 

 

#29. 좌측부터 장산, 금정봉, 배산

 

 

 

 

 

#30. 구포3동 일대

 

 

 

 

 

#31.

 

 

 

 

 

#32. 백양산(白楊山)으로 가는 능선길. 산불방지용 방화선이 너무 넓다.

 

 

 

 

 

#33. 만남의 광장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34. 멀리 백양산이 보이고...

 

 

 

 

 

#35. 불태령(佛態嶺). '불웅령'으로 쓰인 것은 잘못된 정상석이다. 요즘 북구청에서는 '백양산 북봉'이라고 부른다

 ***불태령(佛態嶺, 611m): 흔히 불웅령(佛熊嶺), 불능령(佛能嶺)이라고 잘못 읽는다. 사실 이 불태령은 611봉이 아니라 현재 성지곡에서 만덕동으로 넘어가는 '만남의 광장'(340m)을 불태령이라고 해야 한다. 이 고개는 옛 만덕동 사람들이 부태고개('불태고개'에서 'ㄹ' 탈락)라고 부르던 곳이다.

 

 

 

 

#36.

 

 

 

 

 

#37. 영도 조도(朝島)과 태종대

 

 

 

 

 

#38.

 

 

 

 

 

#39.

 

 

 

 

 

#40.

 

 

 

 

 

#41.

 

 

 

 

 

#42. 낙동강 하구

 

 

 

 

 

#43. 백양산 가는 능선길

 

 

 

 

 

#44. 백양터널과 모라동 일대

 

 

 

 

 

#45. 산 위에서 내려다 본 운수사(雲水寺)

 

 

 

 

 

#46.

 

 

 

 

 

#47.

 

 

 

 

 

#48. 백양산(642m)

 

...백양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암산으로 불렸다. 남쪽은 당감동 뒷산의 천년고찰 선암사에 의해 선암산으로 불렸고, 그 반대편 서쪽에서는 모라 운수사의 이름을 본따 운수산(雲水山)으로 명명됐다. 조선시대 좌수영지(左水營誌) ‘병고조’(兵庫條)에는 운수산을 봉산(封山)으로 정해 놓고 수군의 병선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나무를 반출하였다. 그 만큼 당시 백양산은 울창했다 한다.

지금의 백양산은 초읍쪽에 신라시대 백양사란 사찰에 의해 불려진 이름이 지금까지 남게 됐다.

백양산은 구포의 주산인 주지봉(蛛蜘峰)과 이어진다. 산 정상에 마치 거미가 웅크린 모습의 암봉이 연이어 솟아 있어 낙타봉으로도 불리며 이 길은 백양산에서는 가장 옹골찬 산길로 시랑골과 음정골이 흘러 내린다. 시랑골 골짜기에는 차디찬 금샘터가 있어 찾는 이가 많이 있다.

초읍의 성지곡 수원지에는 어린이 대공원이 있으며 이는 1909년에 축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수원지이다. 주변에는 일제시대때부터 조림한 편백나무가 장관으로 삼림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49. 금정산 고당봉이 보인다.

 

 

 

 

 

#50. 애진봉(愛鎭峰). 부산진구를 사랑하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봉우리가 아닌 안부(鞍部)에 있어서 조금 이상하다.

 

 

 

 

 

#51. 애진봉

 

 

 

 

 

#52. 애진봉 표석. 이 곳을 지나면 운수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고, 급경사 돌계단을 수없이 내려와야 한다.

 

 

 

 

 

#53. 운수사의 새 법당. 산행로를 내려오면 제일 먼저 만나는 운수사 건물이다.

 

 

 

 

 

#54. 새로 지은 대웅보전.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로 1993년에 착공 2006년에 완공했다. 10년이 넘는 대규모 불사로 이루어진 운수사 대웅보전은 대웅전과 기타 부속건물들이 자리한 경내지보다 훨씬 위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55. 운수사(雲水寺) 전경

 

 

 

 

 

#56. 운수사에서 백양산 애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57. 이 운수사(雲水寺)는 1976년 5월 쯤 구포사는 친구 따라 놀러와 본 곳이다. 절 옆 계곡의 나무그늘 아래 바위에서 점심 먹고, 가재 잡고, 하루 잘 놀다가 간 곳이다.

 

 

 

 

 

#58. 따뜻한 햇볕에 말리고('메주를 띄운다'고 한다) 있는 메주가 아주 많다.

 

 

 

 

 

 

#59. 운수사 대웅전. 이 운수사는 가락국 제8대왕인 질지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뒷받침할 사료는 없음.밀양의 자성산만어사(慈聖山萬魚寺), 천태산부은사(天台山父恩寺), 양산의 취천산신흥사(鷲遷山新興寺:양산군 원동면 영포리) 등과 같이 남방불교의 영향으로 지어진 듯 하다. 좌측은 삼성각, 우측은 용왕각

 

 

 

 

 

#60. 운수사는 금정산 범어사, 백양산 선암사, 금련산 마하사와 같이 부산지역의 4대 고찰(古刹)로 손꼽힌다.

 

 

 

 

 

#61. 운수사 대웅전 안내판

 

 

 

 

 

#62. 운수사 사적비. 대웅전 오른쪽에 있다.

 

 

 

 

 

#63.

 

 

 

 

 

#64.

 ...<설화1 : 대중을 줄이려고 복전을 깨다>

 

지난날 운수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전설이 있다.

최근 대웅보전 불사를 위해 터를 조성하던 중 주변의 논밭이 모두 절터였음을 확인해 지난날 이 절의 규모가 매우 컸음이 드러났지만 실제로 옛날 운수사는 수많은 대중이 기거해 한 끼 공양을 지으려면 쌀뜨물이 운수계곡을 거쳐 10리나 떨어진 모라(毛羅)마을까지 흘러내렸다고 한다.

 

주지스님은 이처럼 스님들이 많은데다 신도들까지 붐벼 수도하는 도량으로 지켜가기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을 방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날 관광사찰들이 안고 있는 것과 같은 고민을 당시 운수사의 주지스님도 하게 된 셈이다.

 

스님이 쓴 방편은 운수사를 복전으로 만들어준다고 믿고 있던 절 앞 두꺼비바위의 턱을 깨버리는 것. 복을 조금 줄이기로 한 처방이었다. 이렇게 하여 두꺼비바위의 턱 부분을 깨어내자 바위 속에서 청사자 한 마리가 나와 북쪽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운수사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줄어드는데 그치지 않고 거의 끊기게 되면서 사세도 크게 기울고 말았다고 한다. 도량의 기운이 청정해지다 못해 황량해진 것이다.

 

 

 

 

 

#65.

 

 

 

 

 

#66. 대웅전 뒷편의 장독대

 

 

 

 

 

#67.

 

 

 

 

 

#68.

 

 

 

 

 

#69.

 

 

 

 

 

#70.

 ...<가야사찰과 돌두꺼비>

 

이 돌두꺼비는 지금도 운수사 앞 숲속에 그대로 있다. 일명 모라계곡으로도 불리는 운수계곡으로 오르는 산길을 오르다 보면 계곡이 끝날 무렵에 마지막 약수터가 있는데 그 바로 위 왼쪽 숲속에 전설의 주인공인 두꺼비바위가 있다. 머리를 비스듬히 들고 앉은 자연석의 모습이 영락없는 한 마리의 큰 두꺼비이다.

 

가야시대 사찰들에서 자주 본 모습이다. 삼랑진에 있는 만어사에 가면 이와 같은 모습의 바위가 미륵전에 있다. 만어사의 돌두꺼비는 가슴에 부처상을 한 문양까지 있어 아예 미륵불로 모셔진 것이다.

뿐만 아니다. 무척산모은암(無隻山母恩庵)에 가도 돌두꺼비가 있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하늘로 치솟은 큰 바위 중간쯤에 두꺼비 한 마리가 붙어 위로 기어오르고 있다. 살아 있는 두꺼비가 아니라 만들어서 붙였다고 할 만큼 두꺼비의 형상을 빼닮은 자연석이다. 모은암은 이 돌두꺼비가 붙은 바위를 연화봉으로 이름 붙였다. 종교적 상징성을 미륵불에 못지않게 크게 둔 것이다.

 

이들과 비슷한 돌두꺼비가 운수사에도 있다는 것은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 유독 가야시대 창건을 주장하는 이 지역 사찰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두꺼비 모양의 바위를 복전으로 삼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당시의 종교적 특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고찰이 필요해 보인다.

 

 

 

 

#71.

 

 

 

 

 

#72. 용왕각(龍王閣). 특이하게도 다른 절에는 다 있는 산신각이 없고, 용왕각이 있는 것을 보면 가야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낙동강 유역 사람들의 강과 바다에 대한 외경심을 엿볼 수 있다. 

 

 

 

 

 

#73. 메주와 장독대 수를 헤아려 보니 이제는 많은 대중이 모이는 것을 알 수 있다.

 

 

 

 

 

#74.

 

 

 

 

 

#75. 새로 지은 법당에서 독경소리가 흘러나온다.

 ...<설화2 : 무명대사>

우선 운수사의 창건과 관련한 것으로 경내에 있는 약수터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이 되는 것을 보고 운수사로 하였다는 설이 있고 또한 절이 번창했던 시절에는 수많은 승려들이 기거해 쌀 씻은 물이 계곡을 흐르는 모습이 흰구름을 연상할 정도였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오래된 만큼이나 운수사는 많은 전설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설화는 무명대사에 관한 이야기다.

 

옛날 운수사에는 자기의 성도 잘 모르는 얼핏보면 좀 모자라는 듯한 스님이 한분 있었는데 처음엔 승려로서 수계를 받고 법명도 받았으나 한번도 쓰지 않아 그냥 젊은 스님들이 대사님이라 불렀고 이름이 없어 무명대사로 통했다고 한다.

무명대사는 평소에 이상한 행적을 남겼는데 한번은 깊은 밤중에 법당 뒤에서 솔잎에 물을 묻혀서 서쪽하늘을 향하여 물을 뿌리고 있었다. 래서 잠을 자던 스님들이 달려나와 무명대사께 ‘무얼하십니까?’하고 물었더니 ‘저 멀리 해인사에 불이 났으니 빨리 꺼야한다’면서 계속 물을 뿌렸다. 그리고 얼마 후 해인사에서 정알 큰불이 나서 도저히 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는데 갑자기 동쪽하늘에서 구름이 몰려오더니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져 순식간에 불을 꺼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부터 바보취급을 받던 무명대사는 한 몸에 존경을 받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76. 운수사 입구의 안내지도

 

 

 

 

 

#77. 운수사 입구

 

 

 

 

 

#78. 운수사 입구 백양터널 매표소

 

 

 

 

 

#79.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