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조령산(鳥嶺山, 1025m)-->신선암봉(937m)-->깃대봉(835m)(2008.4.20)
[산행코스] 이화령(10:58)-->잇단 헬기장-->조령샘(12:05)-->헬기장-->조령산정상(1025m, 12:27)-->신선암봉(937m, 13:52)-->밧줄코스-->깃대봉(치마바위봉, 835m, 16:02)-->용성골-->새터휴게소 주차장(16:53)
[날씨] 맑음
#1. 이화령에 있는 '임꺽정'이가 왼손에 쥐고 있는 '괴산청결고추'
#2. 이화령 휴게소
... [이화령]
백두대간 상의 이화령(梨花嶺←伊火嶺? 529m)에서 대미산(大美山←黛眉山· 1,115m)에 이르는 조령산(鳥嶺山·1,026m) 구간은 이 일대 산봉의 주산인 주흘산(主屹山·1,106m), 조산(祖山)인 대미산 및 탄항산(炭項山·857m)·포암산(布巖山·962m) 등의 명산과 함께 고금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국계(國界) 또는 도계(道界) · 군계(郡界) 등의 지방경계를 이루고 있는, 행정·군사 상의 주요 영로(嶺路)인 이화령·조령(鳥嶺:650m)·하늘재(525m) 등이 자리한 요충지대다.
이 일대는 일찍이 고대시절에는 백제와 신라, 또는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을 이루기도 했고,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도계 및 연풍·충주와 문경의 군계 및 영남 지방의 경계를 이루었다. 현재도 충북와 경북의 도계 및 괴산군·충주시·제천시와 문경시의 시군계를 이루고 있다.
이 중 현대에 이르러 죽령과 함께 조령(새재)을 대신하여 영남 지방의 경계를 이루고 있던 이화령 고갯길은 현재는 모두 터널(tunnel), 곧 굴로(窟路)로 바뀌어 역사 속의 영로로만 인식되어 가고, 이제는 단지 여행객·유람객들의 탐방로로만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화령 곧 이우릿재는 아득한 고개
조령산 남쪽에 위치한 이화령 속칭 이우릿재는 조선세종실록 지리지 문경조 및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대동지지(大東地志) 등의 역대 지리지 문경조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이화현(伊火峴)으로 표기하던 고개 이름인데, 그 의미는 분명치 않다.
현재의 ‘梨花嶺’ 표기는 조선총독부에서 1914~1918년에 걸쳐 조사 제작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서 잘못 표기한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본래의 의미가 변질된 표기다. 1929년에 김유동이 저술 간행한 팔도명승고적 문경군조에도 伊火峴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살 필수 있다.
이화령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19 병고(兵考)에 보이는, 조선 숙종 31년(1705)조 기사에 의하면, 이오령(伊吾嶺)으로도 표기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방언(方言) 상에서 이화령→아와령→이오령으로 전음(轉音)되어 일컬어지던 것을 소리 나는 그대로 표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화령의 속칭 이우릿재도 이화령 부근의 동리 이름을 따서 이화리의 고개란 뜻으로 이화릿재라 일컫던 말이 이와릿재→이우릿재로 전음된 것이거나, 또는 이화(伊火)의 음과 훈(訓)이 혼용된 이불(벌)재, 이부릿재→이우릿재로 전음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음과 훈이 혼용되어 일컬어지는 땅이름 용례는 우리 땅이름에 흔히 보이는 것으로, 예컨대 하늘재 동남쪽 문경읍 갈평리의 갈평(葛坪)도 속칭 갈벌이라 일컫기도 하는 것과 같은 예이다.
또는 이화령은 아득하다, 희미하다의 옛말 ‘입다’의 고형태인 ‘이블다(이울다)’에서 ‘이블’을 취하여 아득한 고개라는 뜻으로 이블재[伊火峴]라 일컫던 것이 전음되어 이울재→이우릿재라 일컫던 고개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이화령은 1925년에 차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로 닦이면서 북쪽에 위치한 조령을 대신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요 교통로의 기능을 담당했고, 조령은 옛길의 하나로서 가벼운 등산과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로 변했다.
#3. 이화령 휴게소에서 바라본 고속도로
#4. 할미꽃
#5. 제비꽃
#6. 각시붓꽃
#7. 제비꽃
#8. 노랑제비꽃
#9.
#10. 진행방향 쪽에 있는 조령산
#11. 흰색 산자고
#12. 산괴불주머니
#13. 현호색
#14. 현호색
#15. 태백제비꽃
#16. 노랑제비꽃
#17. 조령샘에서 목을 축이고.
#18.
#19. 참개별꽃 군락
#20. 조령산 정상의 노랑제비꽃
#21. 조령산 정상
#22. 조령산 정상의 이정표
#23. 조령산 정상에서 한 컷
...[조령산(鳥嶺山)]
조령산은 북쪽으로 영남대로 상의 큰 고개인 조령과 남쪽으로 3번 국도 상의 큰 고개인 이화령을 거느리고 있는 문경의 큰 산이다. 조령산은 동국여지승람·대동지지 등의 연풍조 기록과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공정산(公正山)으로 불리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산이 조령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아마도 조선총독부에서 이 산 북쪽에 위치한 조령관문의 지명도와, 국방상의 전략적 차원에서 이 산에 축성한 조령산성 등이 자리하고 있는 산이라 하여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 이 산의 산명을 조령산(鳥嶺山)으로 표기하기 시작한 일제시대 이후의 일이라 추측된다.
조령산은 이화령 고갯마루에 서 있는, 충북과 경북의 도경계를 알리는 도계비 좌측 북쪽 10m 정도에 있는 등산로 입구의 안내판과 쉼터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약 70분 정도 오르면 쉽게 정상에 이른다. 그러나 등산로가 마루금을 따라 가는 능선길이 아니라 대체로 9부 능선길을 따라가게 되므로 먼 곳까지 조망해 볼 수 없어 조령샘 근처 삼거리 등의 안내판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정상으로 가는 방향을 헷갈리기 쉽다.
조령, 속칭 새재는 조령산 북쪽 백두대간 상에 위치한다. 예부터 영남쪽에서 이 고개를 넘어 충주를 경유해 한양으로 통하는 가장 크고 빠른 고갯길이었다. 새재는 조선시대 과거길에 올랐던 영남의 선비들이 급제의 꿈을 안고 넘었던 고개다. 그로 인해 새재 이남의 고을 이름을 영남 자제들의 경사스러운 과거급제 소식을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고을이라 하여 문경(聞慶)이라 했다는 속설까지도 생겨나게 됐다.
그러나 여지승람과 대동지지 등의 문경조 연혁에 의하면, 이미 고려 태조 때부터 이 고을 이름을 문희군(聞喜郡)이라 불러왔고, 고려 현종 이후 조선조 이전 시기에 ‘聞喜’의 기쁠 희(喜) 자와 유사 의미를 지닌 ‘慶’자로 고쳐 문경이라 불러온 것을 보면, 위의 지명유래는 아마도 부회되어 생겨난 속설일 것이라 추측된다.
새재의 한자말 표기에 있어서는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앞선 시기 문헌에 초점(草岾), 여지승람·여지도서 등 조선 중·후기의 지리지 기록에 조령(鳥嶺),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여암전서(旅菴全書) 산수고(山水考) 문경조에 신령(新嶺) 등의 표기를 살필 수 있다.
새재의 땅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들 한자말 표기와 연관되어 설명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속설은 곧 조령과 연관시켜 ‘나는 새도 쉬어가는 험준한 고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험하고 높은 고개’라 풀이하는 것이다. 또는 초점과 연관시켜 ‘새(억새 따위)가 우거진 고개’라 풀이하고도 있다. 여기서의 ‘새’는 곧 산과 들에서 자라는 띠나 억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새재에 대하여 이미 고려시대부터 ‘草岾’이라 불러왔고, 또 새재 골짜기 들머리의 마을 이름을 조선시대에도 초곡방(草谷坊)으로 칭했고, 현재까지도 조령 제1관문 위쪽을 상초리(上草里), 아래쪽을 하초리(下草里)라 불러온 것을 보면, 이곳 조령 일원에 새(억새 따위)가 많아 뜻옮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신령과 연관시켜 일찍이 신라 때부터 영로가 개통된 죽령·계립령이 옛 고개, 묵은 고개임에 대하여 이 고개는 새로 난 고개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신경준은 일찍이 이 표기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조령…신라 아달라왕이 이 영로를 새로 열었기 때문에 신령이라 했다. 방언에 조(鳥)의 해석(훈)을 새[新]라 하므로 鳥嶺이라 했다. 또 방언에 초(草)의 해석이 新[새]의 해석과 동일하므로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 아달라이사금조에 의하면, 계립령은 아달라왕 3년에, 죽령은 5년에 개통됐다는 기사가 보이나, 같은 왕대이든, 다른 왕대이든 신라시대에 조령이 개설됐다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신경준의 새재설(신령설)을 다 동의할 수는 없으나, 계립령·죽령의 옛 길에 대하여 새로 개설한 영로라는 의미로 새재[新嶺]라 했다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를 후대에 ‘鳥嶺’으로 표기하게 된 것은 주로 시인·묵객과 같은 표기자의 주관에 따라 좀더 우아하게 소리옮김한 표기로 볼 수 있다. 위의 설들은 대체로 다 일리 있는 말들이라 어느 설이 정설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24. 멀리 월악산 영봉이 보이고.
#25.
#26. 파노라마. 건너편에 주흘산과 부봉이 보인다.
#27. 월악산 영봉
#28. 부봉의 마루금
#29. 주흘산
#30. TV 드라마 '왕건'의 야외촬영장
#31. 가야할 곳 신선암봉
#32. 신선암봉
#33. 조령 3관문으로 가는 길. 주위는 온통 꽃으로 둘러 싸여있다.
#34. 조령산에서 신선암봉으로 오는 길. 경사가 만만찮다.
#35. 진달래 꽃 뒤의 암봉들.
#36.
#37.
#38.
#39.
#40. 신선암봉(937m)
#41. 뒤돌아본 신선암봉
#42. 신선암봉에서의 하산길은 밧줄구간의 연속이다.
#43.
#44.
#45.
#46.
#47. 멀고 먼 길을 걸어 드디어 도착한 깃대봉(치마바위봉, 835m)
...[치마바위봉(깃대봉)]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에 있는 산.
높이는 835m이다. 산이름은 정상 일대에 있는 화강암 절벽이 치마를 펼친 듯하다고 하여 생겨났으며, 산모습이 깃대처럼 뾰족하다 하여 깃대봉이라고도 한다. 조령산맥의 한 줄기로, 백두대간에 속하는 산이기도 하다. 조령산(鳥嶺山:1,017m) 정상 북쪽 능선에 있다. 주위에 조령산의 주봉(主峰)인 신선봉(1,017m)을 비롯해 크고 작은 암봉(巖峰)과 암벽지대가 많다.
정상에서는 월악산의 주능선과 만수봉, 포암산, 부봉, 주흘산(主屹山), 조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산신각이 있고 바로 밑에 조령약수가 있다. 숲이 울창하며, 황장군바윗골, 치마바윗골, 옹주골, 용산골, 장치바윗골, 말용초폭포 등 여러 명소가 기암괴석과 어울려 빼어난 비경을 이룬다.
#48. 깃대봉에서 하산길에 만난 진달래 군락
#49. 하늘을 떠 받치듯 곧게 뻗은 전나무 숲
#50. 조팝나무 꽃
#51. 새터 주차장에서 바라본 조령산 능선
#52.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