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 금오산(977m)(2007.12.16)
[코스] 금오동천 안내판-->급경사 오르막-->전망대-->삼각점-->푯말-->푯말-->헬기장(905m)-->금오산 현월봉(977m)-->약사암-->일주문-->오른쪽 길로 하산-->푯말에서 왼쪽길-->습지-->성안-->금오정-->푯말-->습지-->성문-->내리막길-->집터-->푯말-->범바위-->묘-->푯말-->선녀탕-->구유소-->용시소-->벅시소-->금오식당-->주차장
...금오산(金烏山·977m)은 구미시와 칠곡군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이 산은 백두대간 상의 삼도봉(1,177m) 남쪽 대덕산(1,291m)에서 남동으로 가지를 친 수도지맥을 모산으로 한다. 수도지맥은 수도산(1,317m)에서 계속 가야산으로 이어진다. 수도산에서 북동으로 또 가지를 치는 능선이 삼방산(864m)~염속산(870m)~백마산(715.7m)을 지난 다음, 마지막으로 들어 올린 산이 금오산이다. 금오산을 지난 잔릉들은 감천과 낙동강에 이르러 모두 가라앉는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 또는 남숭산으로 불리다가 당나라 대각국사가 이곳에 와서 수도하던 중 저녁놀에 황금빛 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금오산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난 산이다. 이 산 동릉 끝머리인 구미시 상모동에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고 박대통령은 혁명 후 경제와 국토개발 초기 귀향길에 금오산 대혜폭포까지 등산하다가 폭포 아래에 어지럽게 버려진 유리병 파편과 쓰레기를 손수 주운 적이 있다. 이 때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 후 금오산은 자연보호 발상지가 됐다. 금오산은 70년 6월 1일 우리나라 최초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면적 37.9㎢)됐다.
...금오산은 구미시내 방면 공원 관리사무소 주차장에서 도선굴~대혜골, 도선굴~할딱고개~마애불~약사암, 법성사~약사암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코스들이 잘 알려져 있고, 이 지역만 각종 가이드북에 교과서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구미시내 반대편인 금오산 남쪽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방면에도 비경을 간직한 코스가 있다. 이 방면 코스들은 영남지역 등산인들이 예전부터 다니기는 했지만 아직 상세하게 소개된 적이 없다. 이 방면은 대중교통편이 불편하고 주차시설이 열악한 것이 흠이다.
금오산 이름과 무관하지 않은 숭오리(崇烏里)에는 경북팔경 중 첫손에 꼽는 금오동천과 소림사 석굴, 부처님바위, 도수령 능선에서 보이는 정상과 어우러진 약수암 풍경 등 비경지대와 보물인 대각국사비 등이 등산로 마다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방면은 대원사, 소림사, 숭산마을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들이 대표적이다.[월간 산 2007.6월호에서 인용]
#1. 산행기점 : 칠곡군 북삼읍 숭오1리
#2. 숭오1리 전경
#3. 건너편 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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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금오산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산줄기
#6. 정상으로 가는 도중에 보이는 기암괴석
#7. 왼쪽의 잘록한 곳이 성안에서 금오동천으로 넘어오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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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들판
#12. 발 아래 경부고속철도 북삼터널
#13. 올라온 능선을 되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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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능선 너머 구미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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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약사암과 종루. 거대한 암벽 아래 있다.
#21. 금오산성과 현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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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방송사 중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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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금오산 현월봉(懸月峰, 976m). 실제 산 정상은 방송사 중계시설이 차지하고 있고, 정상석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등산객들을 위해 이렇게 정상석을 마련해놓고 있다. 열심히 찍으삼...ㅎㅎㅎ
... [금오산(金烏山)]
금오산은 해발고도(현월봉 976m)는 그리 높지 않지만 주변이 비교적 평지로 둘러싸여 있고 오랜 침식작용에도 깎이지 않는 아주 단단한 유문암과 안산암 등 화산암류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 인해 산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급경사의 모습을 나타내며 산의 높낮이 차가 심해 멀리서도 험준한 산세를 자랑하고 있다.
안동에서 흘러온 낙동강 물줄기가 내성천과 합류하여 상주를 지나고 다시 군위, 의성을 흘러온 위천과 합류한 낙동강은 다시 선산에서 감천과 만나 해평과 고아를 지나 구미를 흐르며 칠곡의 약목을 끼고 왜관으로 흘러간다. 홍수 때 범람하면서 만들어 놓은 넓은 충적평야는 예로부터 기름진 터전을 만들어 주었다. 남쪽에서 우뚝 솟아 이들을 굽어보는 산이 금오산이다.
금오산은 골짜기마다 남성적인 기상이 넘치는 기암괴석에 힘과 기백이 서려 있고, 빼어난 경관을 갖추고 있어 훌륭한 인물 역시 많이 배출하였다. 특히 영남사림의 원류 야은 길재 선생이 오직 성리학에만 증진하며 후학을 길러낸 곳이 바로 금오산이다. 선생의 문하에는 김숙자 등 많은 학자가 배출되어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로 영남학파의 학통을 잇게 했다. 구한말 의병을 일으켜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했으며 의병활동의 기세를 떨친 왕산 허위 선생 또한 구미 출신이다.
금오산의 지형적인 특징을 보면 화산암 계통의 암석으로 구성되어 주변 지역에 비해 침식에 강하기 때문에 잔구성(오랜 침식작용에도 남은) 산지를 이루고 있다. 차별 침식(단단한 암석과 연한 암석의 침식 차이)으로 형성된 잔구는 구릉성 산지에 비해 경사가 급한 편이다. 금오산 정상부는 소위 고위평탄면의 형태인데, 정상부근(800m)에 발달한 고원은 전형적인 잔구 위의 평탄면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고위평탄면은 해발고도 700m이상의 높고 평탄한 산지지형을 말한다. 중생대 대보조산운동 이후 오랜 세월의 침식으로 평탄해진 한반도가 신생대 제3기 비대칭적인 경동성(傾動性) 융기운동으로 융기하였다. 이때 이전의 평탄면은 하천 골짜기를 중심으로 침식이 활발히 진행되나, 그 평탄면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산지의 곳곳에 남게 되는데, 이것을 고위평탄면이라고 한다. 고위평탄면은 융기 이전의 한반도가 평탄 지형임을 반영하는 증거가 되는 대표적 지형이다. 평창, 대관령, 무주, 진안, 장수의 진안고원, 금오산, 육백산 등도 고위평탄면에 해당된다. 북한의 개마고원도 고위평탄면에 해당된다.
강원도 평창군에는 평창, 봉평, 용평, 장평 등 ‘평’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이 지역은 대부분 경사가 급하고 가파른 산지를 이루고 있지만, 정상 부근에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평탄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평탄면을 이용하여 산성을 축조하였는데 이것이 금오산성이다. 금오산성은 976m의 험준한 금오산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이 성은 고려시대에 축조되었는데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쌌는데 둘레가 5리나 되며, 내·외성벽의 길이는 6.3㎞나 되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이용되었다. 여기에는 오래전부터 이미 마을(성안마을)이 형성되어 왔으며, 산성이라는 역사적 유적을 가지고 ‘산성마을’이란 특수한 촌락기능을 담당해 왔다.
금오산은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1977년 구미 금오산에서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강산을 더 아름답고 쓸모 있게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고 자연을 내 몸 같이 아끼고 보호하는 정신이 바로 국토를 지키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이며 곧 애국심이라고 강조한 것을 계기로 자연보호운동이 점화, 1978년 10월 5일 역사적인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되었다.
해운사·약사암·금강사·법성사·대원사 등의 고찰과 고려 말기의 충신 야은 길재(吉再)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채미정(採薇亭), 신라시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하던 도선굴을 비롯해 명금폭포·세류폭포 등이 있다.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490),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251), 오봉동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45) 등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다.[대구매일 신문 기사 인용]
정상석 뒷면에 '현월봉은 초생달이 걸려있는 듯한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27. 약사암 일주문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
#28. 약사암 일주문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
#29. 약사암(藥師庵)
#30. 약사암(藥師庵)에서 내려다 본 구미시가지
#31. 약사암(藥師庵)
...[약사암(藥師庵)]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625 ~ 702)가 초년에 천하비경을 찾아 이 바위 아래에서 참선(參禪)할 때 하늘의 선녀가 하루 한끼의 주먹밥을 내려주어 하루 하루 요기를 했고 약사여래(藥師如來)가 내려와 시중을 들어줌으로서 사바의 번뇌를 끊고 득도하여 고승(高僧)이 되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고 한다.
현재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뚜렷한 기록이 없으나,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참선하여 득도하였다고 하니 신라시대에 세워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조선 고종때 영남진지(嶺南鎭志)에 의하면 “금오산성내의 3리에 있으며 법당이 8칸이라”되어 있으나 현재는 법당이 2칸이며 그 때의 건물이 아니니 그 후 여러번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35년 약사암 중수기에 의하면 “지리산에서 석불3구 중 3형제불을 가져와 1구는 성주의 수도암, 1구는 금릉의 직지사에 나머지 1구는 약사암에 봉안했다”하는데 학계의 조사 연구에 의하면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약사암은 동국제일문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일주문을 비롯해 약사전, 삼성각, 마당아래 요사채, 해우소, 출렁다리 건너 있는 종각 등이 있다.
#32. 약사암(藥師庵)의 종루
#33. 약사암(藥師庵)의 종루
#34. 구미 시가지
#35. 약사암(藥師庵)의 요사채
#36. 약사암 요사채와 종루
#37. 약사암(藥師庵). 단청이 많이 낡았다.
#38. 약사암으로 들어오는 일주문. 현월봉을 지나서 바위틈의 좁다란 계단을 따라 내려온다.
#39. 성안 가는 길
#40. 우람한 비석.
#41. 비석의 글자. 뭔 내용이지? 언뜻 보기에는 공덕비 종류이다.
#42. 집터. 축대를 가지런히 정성껏 쌓았다.
#43. 돌무더기
#44. 선녀탕. 갈수기라 폭포의 물이 말랐다. 폭포 옆의 벤치에 무당이 버리고 간 돼지머리가 하나 놓여있다. 기분 나빠~~
#45. 구유소. 선녀탕에서 아래쪽으로 50미터.
#46. 벅시소
#47. 벅시소 아래쪽에서 계곡을 향하여 한 컷
#48.
#49. 입구에 즐비한 음식점들. 겨울철 비수기라 파리를 날리고 있다.
#50. 입구에 즐비한 음식점들
#51.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