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행일지

밀양 석골사-->억산(954m)-->구만산(785m)-->송백(2007.7.21)

푸른솔♬ 2007. 7. 22. 07:55

[코스] : 밀양 원서리(09:05)-->석골사-->대비골-->팔풍재-->억산-->오봉리 갈림길-->인곡저수지 갈림길-->임도-->인재(사거리)-->바위전망봉-->인곡저수지 갈림길-->육화산 갈림길-->양촌갈림길-->구만산-->바위전망대-->구만폭포-->구만계곡-->철계단(구만약수)-->구만암-->구만산장-->구만사-->양촌-->산내초등학교 정류소(16:30)

 

[교통편] 1) 집 출발(06:00)-->지하철 승차(06:20)-->언양행 직행버스 승차(06:40, \2,900원)-->대우버스 807번 승차(07:40, \1,000원)-->밀성여객 승차(08:20, 원서리까지 \2,300원)  (*1713번 버스는 \1,500원임)

- 차 시간 : 08:20, 09:20, 10:00, 11:10, 12:10

2) 산내초교 출발(16:40, \2,600원)-->석남사버스정류장(1713번, 17:20, \1,500원)-->부산행 직행버스(17:50, \2,900)-->부산도착(18:30)

- 차 시간 : 15:00, 15:30, 16:00(시내,얼음골), 16:40(얼음골), 17:20(얼음골), 18:10, 18:55(얼음골), 20:15(얼음골)

 

[날씨] 하루 종일 흐리고 안개 자욱함. 전망은 전혀 볼 수 없었음. 억산 정상을 20m 우측에 두고 그냥 지나칠 정도. 대비골에서 약 10분 정도 비가 내렸음. 습도가 높고 눅눅하여 옷이 몸에 감길 정도였음. 기온: 22도, 강수확률: 오전40%, 오후 60%

 

 

 

#1. 밀양행 버스에 배낭을 올려놓고 출발시간 10분 전에 바로 옆에 있는 석남사 산문을 촬영했다. 이른 아침 매표소의 여스님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2. '가지산 석남사' '종립특별선원'이라는 현판.

 

 

 

 

 

 

#3. 매표소에 피어있는 수국.

 

 

 

 

 

 

#4. 가지산 석남사(伽智山 石南寺) 표석

 

 

 

 

 

 

#5. 석남사 주차장 상가건물. 재작년 6월에 왔을 때는 이 건물이 없었는데...

 

8시 20분에 버스가 출발했다. 등산객은 3팀 정도, 밀양가는 등산객은 나 이외에 2팀, 한 팀은 얼음골에, 한 팀은 송백을 간다고 한다.

 

 

 

 

#6. 원서리 길 가 민가의 울타리에서. 오이꽃이 활짝 피었다.

 

 

 

 

 

 

#7. 석골사로 가는 삼거리. 석골마을의 표지석. 혼자서 석골사를 향해 출발.

 

 

 

 

 

 

#8. 온 동네 밭이 다 사과밭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얼음골 사과'

 

 

 

 

 

 

#9. 날씨가 흐려서인지 아침부터 달맞이꽃이 피었다.

 

 

 

 

 

 

#10. 석골사 폭포

 

 

 

 

 

 

#11. 석골사 극락전(石骨寺 極樂殿). 절이 너무 작다. 주위에 숲이 너무 울창해서 그런지 절 주위가 너무 어두컴컴하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공중화장실에는 냄새가 심하게 난다.

 

[석골사(石骨寺)]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운문산(雲門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560년(신라 진흥왕 12) 비허(備虛)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혜공왕 9)에 법조(法照)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비허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寶壤)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므로, 비허가 절을 창건하고 법조는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이 절은 주건물이 극락전인데, 이 극락전은 
 극락보전·무량수전·무량전·보광명전(普光明殿)·아미타전이라고도 하며 본존은 아미타불이다.

 

이 곳은 한때 석굴사(石窟寺) 또는 노전사(老澱寺)라고도 불렀다.(돌로 된 굴이 많아서 석굴인지, 돌이 많은 골짜기라서 석골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서로 연관이 있는 것같다.마을 이름도 석골이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영조 11) 함화(含花)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광전과 칠성각·산신각·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석조아미타삼존불과 절구·석탑 재료 등이 전한다. 이 중 석조아미타삼존불은 대광전에 있으며, 석탑 재료는 기단과 보주 등만 발굴되었다.

 

이 석골사에는 주지와 상좌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주지와 상좌가 이 절에 머물렀는데, 상좌의 인품과 학덕이 주지보다 높았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주지는 지팡이로 마법을 걸어서 상좌를 강철이로 변하게 하였다. 강철이란 독룡(毒龍)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초목이 말라죽는다는 괴물이다. 강철이로 변한 상좌는 억울함을 참으면서 열심히 불도를 닦았다. 1년 뒤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하늘로 오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화를 내고 몸부림을 쳐서 번개가 치고 우박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인근의 농작물이 죽었고, 이후 매년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강철이가 몸부림을 쳐서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12. 석골사를 지나 두번째 갈림길 이정표 있는 곳에서 왼쪽 길로 오른다. 대비골의 계곡을 이리 저리 건너서 드디어 억산에 올랐다. 안개가 짙어서 전방 10m 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비골에서 팔풍재로는 가지 못하고 샛길을 따라 된비알을 올라왔더니 길은 억산 정상 왼쪽 20여m 능선 쪽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때문에 억산 정상을 찾지 못하고 다시 석골사로 내려가는 능선을 구만산 가는 길로 오인하여 10여분 진행하다가 올라오는 등산객 부부를 만나 지형설명을 듣고 다시 억산 정상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구만산으로 갈라지는 지능선이 있다.

[억산(億山)] 

높이는 944m로, 서쪽에 구만산, 남쪽에 건지봉, 곤지봉이 있으며, 가파른 오르막길과 치솟은 바위봉우리, 군데군데 암반과 절벽으로 절경을 이루지만 산행에는 주의해야 한다. 억산(億山)이란 이름은 '수많은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라는 의미의 억만건곤(億萬乾坤)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온다. 즉 하늘과 땅 사이의 수많은 명산 가운데 명산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억산('깨진바위')의 유래]

옛날 억산 아래 대비사에서 주지스님과 상좌(나이어린 동자승을 지칭함)가 함께 기거하며 수도에 정진하고 있었다. 하루는 스님이 자다가 일어나 보니 옆에 자는 상좌의 몸이 싸늘했다. 스님은 이불을 푹 덮고 따뜻한 방에서 자면 몸이 따뜻할 것인데도 차가우니 이상하게 여겼다.
이튿날 역시 자다가 일어나보니 마침 상좌가 어디엘 갔다가 들어오는지라 스님이 "어디 갔다 오느냐" 하고 묻자 상좌는 "변소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하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데 몸이 역시 차가웠다. 그래서 스님은 한번 지켜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이튿날 자는 척하고 있으니 상좌가 가만히 일어나 스님이 자는지를 확인하려고 스님 코에 귀를 갖다 대는 것이었다. 스님은 일부러 코를 골며 자는 척하고 있었더니 상좌는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더니 밖으로 나갔다.


상좌가 나간 후에 스님도 나가 뒤를 밟기 시작했는데 억산 아래 있는 대비못에 이르자 상좌가 옷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못의 물이 좌~악 갈라지고 상좌가 이무기로 변해서 못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잠시 수영을 한 후 다시 옷을 입고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산 능선을 넘어 운문사 쪽으로 급경사진 곳(속칭 이무기못안)에 이르자 상좌는 또 다시 웃 옷을 벗더니 커다란 빗자루로 돌을 쓸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게도 상좌가 비질을 하자 크고 작은 돌들이 가랑잎처럼 쓸려져 내려가는 것이었다. 스님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광경에 자신이 상좌를 몰래 뒤따라왔다는 사실을 잊고 큰 소리로 "상좌야 거기서 무얼하느냐"고 묻고 말았다.
갑자기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놀란 상좌가 뒤돌아서 스님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1년만 있으면 천 년을 채워 용이될 수 있는데 아 억울하다" 며 크게 탄식하더니 갑자기 이무기로 변해 하늘로 도망가 버렸다.
이 때 이무기가 밀양방면으로 도망가면서 꼬리부분으로 억산 산봉우리를 내리쳐 산봉우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억산에서 밀양쪽(운문사 앞산)으로 약 1km쯤 내려가면 마치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처럼 1백여m 정도 자연석이 질서정연하게 깔려있다.

 

 

 

 

 

#13. 억산 정상에는 7~8명의 등산객들이 밥과 라면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14. 구만산으로 가는 긴~~~종주능선 중에 만난 바위채송화.

 

 

 

 

 

 

#15. 안개에 싸인 사자봉. 인(곡)재를 지나서 계속 등로를 따라 오르는 중 만난 바위전망대. 여기 올때까지 겨우  한 사람을 만났다. 날씨 때문인지 종주 등산객은 거의 없다.

 

 

 

 

 

 

#16. 북암산

 

 

 

 

 

 

#17. 진행방향 쪽의 암봉

 

 

 

 

 

 

#18. 12시 방향의 봉우리. 안개가 짙어서 무슨 봉우리인지 분간할 수 없다.

 바위전망대를 지나서는 배낭과 카메라를 벗어놓고 휴식을 취했다. 물도 한 잔 마시고, 자두 두 알을 꺼내어 천천히 먹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거의 쉬지 않았다. 오후 1시 15분, 벌써 허기가 진다. 등산객 부부가 구만산 방향에서 오고 있다. 길을 물어본다. 구만산까지는 약 2km 정도 남았다고 한다.

 

 

 

 

 

#19. 구만산 정상.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다. 아마 통수골을 거쳐서 올라온 사람들인 것 같다. 사진 몇 장을 찍고 정상석 뒤에 앉아서 나도 늦은 점심을 먹는다.(14:14, 출발 14:40)

 [구만산(九萬山)]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에 있는 산. 높이 785m.
임진왜란 당시 구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전화(戰禍)를 피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계곡이 유명하다. 8km가 넘는 골짜기 안에 온갖 비경들을 간직하고 있는데 벼락듬이, 아들바위, 상여바위, 병풍바위 등 천태만상의 기암이 산재해 있다. 임진왜란 당시이면 1492년 경인데 밀양 근처 사람들 다 합쳐도 구만명이나 되었을까?  아주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했다는 뜻이겠지?

 
 

 

 

 

 

 

#20. 구만산 정상을 지나서 하산길의 바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통수골 계곡(14:49)

 

 

 

 

 

 

#21. 바위전망대에 핀 노란원추리.

 

 

 

 

 

 

#22. 구만폭포의 상단. 길 위에서 아래를 보며 찍어서인지 아득하다.

 

 

 

 

 

 

#23. 급경사길을 내려가서 구경해보는 구만폭포.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수량이 아주 풍부하다.

[통수골]

널리 알려지지 않아 조용하고 깊숙한 멋을 느낄수 있는 통수골은 통(桶)속 같은 골짜기란 뜻이다. 이 골짜기 막다른 곳에 구만폭포가 하늘에 걸려 있다. 높이 42m의 2단으로 된 폭포의 양편으로는 90m가 넘는 수직암벽이 병풍을 펼친 듯 에워싸고 있다. 포말을 날리며 떨어지는 폭포수는 층암절벽을 뚫고 하늘에서 퍼붓는 듯한 환상과 함께 청량감을 안겨준다.

 

이 폭포는 통수골이란 또다른 유래의 슬픈 전설을 안고 있다.
폭포를 싸고 있는 병풍 같은 수직암벽의 왼편 50m 허리부분에 한사람이 겨우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토끼길이 있다. 경북 청도군 매전면으로 넘어가는 구만재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 옛날 통장수가 이 길을 지나다가 지게에 얹힌 큰 대나무 통이 암벽에 부딪치면서 그만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그 뒤로 날씨가 흐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두고 온 처자식을 생각하는 통장수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한다.

 

어쨌든 구만폭포는 동서 양쪽에 수직의 암벽이 솟아 있고 좁은 협곡이 남북으로 뚫려 있어 마치 깊은 통 속과도 같은 형국이다. 한편 또다른 면에서 본다면 퉁소속과도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퉁소폭포라고도 부르는데 좁은 골을 타고 폭포상단으로 바람이 몰아치면 퉁소소리를 내는 듯이 들린다. ‘통수’나 퉁소’의 발음이 서로 비슷해 와전된 것이 아닌가 싶다.그런데 웅장한 폭포의 높이에 비하면 소는 그렇게 넓지도 깊지도 않다. 반면 상단에는 암반이 절구통 모양으로 패어 있고 삼면은 화강암 대리석이 병풍을 둘러친 전망대와도 같다. 이 전망대에서 쏟아 붓듯이 떨어지는 물줄기와 계곡의 경관은 그야말로 비경이고 선경이다.

 

 

 

 

 

#24. 멀리서 잡아본 구만폭포

 

 

 

 

 

 

#25. 병풍바위. 이제 통수골(구만계곡)의 비경이 이어진다.

 

 

 

 

 

 

#26.

 

 

 

 

 

 

#27.

 

 

 

 

 

 

#28. 너덜 너덜 너덜길. 발걸음 조심!!!!!

 

 

 

 

 

 

#29. 미끄러운 바위길. 쇠사슬을 잡고 엉금 엉금.

 

 

 

 

 

 

#30. 철계단길. 여자 서너명이 앉아서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여기에 구만약수탕이 있다.

 

 

 

 

 

 

#31. 구만암

 

 

 

 

 

 

#32.

 

 

 

 

 

 

#33. 구만산장 전경. 제법 규모가 크다.

 

 

 

 

 

 

#34. 평화로운 마을 전경. 온통 사과밭 천지다.

 

 

 

 

 

 

#35. 봉의마을 들녘

 

 

 

 

 

 

#36. 길 가에 있는 당산나무.

 

 

 

 

 

 

#37. 산행지도(부산일보, 산&산 39회, 밀양 수리봉~억산)

 

 

 

 

 

 

#38. 산행지도(국제신문, 근교산&그너머 508회, 밀양 억산~수리봉)

 

 

 

 

 

 

#39. 산행지도(국제신문, 근교산&그너머 493회, 밀양 구만산 계곡산행)